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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노트 Books

[플라톤의 국가] 과두정과 참주정에 관하여

by 강성민노트 2019. 3. 16.



0. 프롤로그

어릴 적,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윤리 담당 선생님이 플라톤을 소개하실 때,
‘동굴의 비유’를 주로 설명했던 것 같다.

진짜 참 빛을 발견하고, 진짜를 발견한 사람은
동굴 속의 그림자를 보고도 진짜를 알 수 있다고.
동굴에 갇힌 사람들은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정도.

(나는 그 윤리시간을 참 좋아했었다.)

플라톤의 국가라는 책을 읽어보았다.
공산주의 사상의 온상이다.
이 책은 인본주의적 사상의 핵심이기에 위험하다.
이런 소릴 듣고도 한번 읽어봤다.
(사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여태 단 한번도. 추호도 생각이 없었으나, 왠걸, 요즘 공부가 재밌어졌다. 늦바람이 무서운거다..)

‘국가’라는 책의 정수는 8장에 나온다.
다들 8장(약 500페이지)까지 오는데 지쳐
이 부분을 안 읽어본다면, ‘국가’를 안 읽은거다.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윤리선생님들은 아마도..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듯 하다. 핵심을 얘기 안해주시는 걸 보면..)

이 플라톤의 국가 8장을 근간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사상
존 로크의 정부론 등이 파생되어 나타난다.
플라톤의 정체를 비판, 수정, 수용하는 과정이
현대 정치학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




1.최선자의 정체

국가의 단계에는 총 5단계가 있다.
국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단계는
최선자 정체(왕도정치)이다.
철인이 다스리는 나라.
이데아를 알고 그것의 실체를 파악한 철학하는 자가
다스리는 완전한 나라를 1순위 나라로 보았다.
(이런 국가를 경험할 일이 있을까.. 젠장)


2.명예지상정체

그 아래로 2순위 나라는
명예지상정체(명예지배정체)이다.
최선자 정체와 과두정 사이의 것으로, 체육과 시가 교육이 왕성해지고, 철학의 기초가 다져져 있지만, 국가가 전쟁에서의 승리와 외식적인 명예에 집중되어 가식적으로 철학이 풀어진 국가를 말한다. 당연히 부유함도 있고 백성들은 행복한 듯 하나, 완전한 정체는 아니다.

우리 나라는 이 정체까지는 온 듯 했을 것이다. GNP 20000불을 넘고 올림픽 경기에서 세계 4위의 성과를 이룬 나라, 동계올림픽을 해도 7-8위 정도면 아무래도 체육과 예술 교육에 명예를 부여하는 문화가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령 교수가 88올림픽 때 이룬 문화적 성과를 보라. 당시 개막식, 폐회식을 보고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인문학적 수준이 꽤 높은 것을 놀랬다고 하니, 아마 명예지상정체까지는 이 나라가 경험해 본 듯 하다.
하지만 눈에 보여주기 식이라, 그 안에 철학이 있는 건 아니었지 않은가? 그게 명예지상주의의 폐해이다. 평화보다는 전쟁을 좋아하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딱 한국 사회의 최선의 정체인 듯 하다.


3. 과두정체

세번째는 과두정체이다.
부족할 ‘과’에 머리 ‘두’. 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군중을 다스리는데, 흔히 말하는 경제와 사유재산을 통해서 국가통제를 이루는 단계이다. 이 정체에서는 가진 재산이 곧 능력이며, 부를 이루는 명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정체를 과두정이라고 말한다. (흔히 말하는 경제대통령이다.. 젠장)
이 과두정의 폭망의 이유는 ‘부정부패’이다. 소수의 머리들이 과도한 욕망과 쾌락추구를 제어하지 못하며 스스로 무너지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서 퍼져 나갈 때에 그 과두정체의 사회는 그 밑 단계인 ‘민주정체’로 간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는 자신의 재정을 쓰기 좋아하는 사람보다 법인카드를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다. 돈에 대한 욕심이 머리에서부터 저 하층민까지 이어지고, 돈돈돈돈돈!!! 돈이 모든 것을 말하는 사회가 과두정의 핵심이다.

우리나라는 IMF를 변곡점으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넘으니 거의 광적으로 ‘경제대통령’을 원했다. 그래서 태어난 대통령이 이명박이가 아닌가!!!
스스로 민주정에서 과두정으로 가기 위해 선택한 이명박 정권이 경제적으로는 정말 탁월하게 나라를 세웠을지 몰라도 철학적으로 보면, 과도한 과두정으로 인한 폐단이 훨씬 더 많았다. 그의 주변 인사들이 다 붙잡혀 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명박정부의 명과 암을 지금도 볼 수 있다.

‘덕’보다는 ‘부’.

이명박을 욕할 것이 없는 것이, 국민이 그걸 원했기 때문이다. 덕보다는 ‘부’였다. 선택 2007의 상황을 기억해보라! 17대 대선은 경제대통령을 향한 국민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 대선이었다.


4.민주정체

과두정체가 타락하면 반드시 나타나는 정체가 있는데 민주정체이다. 말 그대로 ‘국민이 주인 된 세상’이다. 나라를 나라답게! 국민을 국민답게! 누군가 떠오르지 않는가?
플라톤의 분류에서 이 정체는 하급국가이다. 과두정의 리더들의 탐욕이 극에 달한다.

과두정의 끝에 나타나는 현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첫째 리더들은 국민을 보지 않고 땅을 보러 다닌다.
둘째, 다음세대들이 리더들에게 배워 투기에 빠진다. (일하고자 하는 자들이 없다는 거다. 3D직업에는 일자리가 넘치는데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하기 싫어하고 국가 산업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셋째, 나머지 사람들은 대출과 이제의 늪에 빠지게 하여 평생을 노예로 살아가게 한다.

대충 이런 식이다. 과두정의 말기에 일어나는 일.

백성이 들고 일어나야할 때라는 것을.
몇몇 선동가(?)들이 발벗고 나선다.

민주정체는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이겨서 다른 편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죽이고 일부는 추방하며, 나머지 시민들에게 ‘평등하게’ 시민권과 관직을 배정한다. 관직은 대체로 ‘추첨’에 의해 할당된다.
이 체제에서 ‘자유’는 모든 법을 우선한다. 자유로 가득 찬 세상!!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민주정이 제공하는 것이다.
전쟁을 해야한다는 강요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안식교도의 집총거부가 무죄가 되는 것이다. 자유가 가장 귀한 것이기 때문에.
동성욕구를 막아야 한다는 것도 강요할 수 없다. 왜?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간통하는 것은? 아내가 상처를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용인해줘야 한다.

젠장할. 이런 빌어먹을 세상.
우리는 사회계약상으로 내가 주먹을 패면 범죄다. 국가가 대신 패줘야 한다. 법으로! 나라의 헌법으로 잘 못한 사람을 패줘야 사회계약법이 성립한다. 젠장할. 국가가 이제 이 통제를 안하겠다고 하는 것은,
죽이고 싶으면 내가 죽여야 하고,
줘 패고 싶으면 내가 패야하는 세상.
동성 성폭력을 당해도 국가가 보호해주지 않고,
이 빌어먹을 자유 때문에 시민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세상이 민주정이라 할 수 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민주정이다. 물론 다른 책에서 민주정이 옳다는 식의 이론으로 플라톤의 하급정체 포지션에 반론을 내 놓는다. 하지만, 가장 먼저 정체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보기에, 이 정체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과두정이 ‘부의 무절제’라면,
민주정은 ‘삶의 무절제’인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나은가? 둘 다 나쁜 것이다! 최선자 정체가 아닌 모든 정체에는 ‘암’과 ‘실’이 존재한다.


​​5. 참주정체

민주정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정도가 깊어지면,
(이 시기가 오래 가면 안된다...)
무정부상태가 된다. 평등한 사람들에게도, 평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일종의 평등을 배분해주는 정체.
어렵지 않은 자들에게도 똑같이 천편일률적인 복지정책으로 망하게 된 베네수엘라의 예가 그와 같을 것이다.

여기서 민주정을 찬성하는 이들은 북유럽의 사회복지제도를 또 말하겠지. (북유럽 사회주의가 성공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안에 있는 1500년의 기독교 문화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게끔 한다는 걸 알아야 할 것이야~~~~)
우리 나라와 북유럽은 태생부터가 다름을 알아야 한다. “이타적인 삶” 개념이 무탑제된 한국 사회는 결코 사회주의로 성공할 수 없다. 더 가지려 하지, 더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한국인의 DNA에는 지금은 없다.

말이 계속 길어지네..

각설하고, 그러한 무정부 상태의 민주 정체가 망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자유의 무절제’이다.
자유가 개개인의 가정까지 스며들어 아비가 자식과 같아지도록 하고, 국회의장의 망치와 대장장이의 망치를 같은 망치로 비유하고 “대장장이도 국회의장 자리에서 망치를 두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는 식(pt.김 제동님)의 얼척이 없는 선동으로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이들을 통해서 세상은 개판이 된다.
동양철학에서 공자의 정명론 ‘군군 신신 부부 자자’ 임금은 임금의 일을, 신하는 신하의 일을, 아버지와 아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해야할 일이 있는데 이것이 무너지면 나라와 가정의 망조로 보았다.

동서양 철학을 막론하고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현상은 ‘망조’이다. 학생인권조례안을 통해서 선생님이 선생의 역할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 부모의 역할을 국가가 제한하고 통제하는 것. 모두. 학교에서 학생들은 선생들을 경시하고 자기의 교육을 돌아봐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대적하고 일어나는 것!!!
어른들은 젊은 이들을 불쾌하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들을 흉내내고 아부하는 사회. 지금의 사회!!!!!

여기에서 ‘참주’가 나온다. 이게 핵심이다.
대중은 자신들의 자유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
참주를 찾는데,
(참주란? 참람할 ‘참’에 주인 ‘주’. 어긋난 주인을 말한다.)
그는 언제나 시민들의 자유를 위해 앞장서고 민중의 선도자로 선다. JTBC의 손석희씨나 문재인 대통령은 ‘참주’인가? 스스로 물어보라!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그 참주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함께 손잡은 동지들을 정적으로 두고 일부는 화해의 제스쳐, 일부는 파멸로 몰아버리면서 그 자리를 유지한다. “내가 시민들을 대변하는 자리에 앉아 있어!!” 하고 그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거짓말도 잘 한다. 자리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모든 짓을 다 한다. 심지어 ‘살인’까지도. 정적의 약점을 잡아 두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심지어 친한 친구임에도) 가차 없이 내쳐버린다. 그것이 참주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격이다. (마귀와 많이 닮아 있지 않은가? 실컷 부려먹다가 내쳐버리는)

이들은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언제나 전쟁을 일으킬 준비가 되어 있다. 민중으로 하여금 지도자가 필요한 상태에 있게 끔 하기 위해서이다.
즉,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거짓말, 살인, 심지어 전쟁까지도 이용할 수 있는 자들이다.

시민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자유를 준다. 특히 ‘일탈의 자유’와 같은 중독성이 강한 것들을 미디어(시가, 극)를 통해서 제공한다. 사람들은 섹스, 스포츠, 스크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게 중독시킨다. 그래서 늘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느끼게 하지만, 실상 그들은 통제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 6.에필로그 Ephilogue

젠장할. 이 나라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책을 읽으니 팍팍 와 닿는다. 1~5단계 중에 4~5단계에 머물러 있는 나라임을 본다.

1960년대 625전쟁 직후 이승만 대통령의 철의 정치가 파국으로 치닫고, 419를 통해 좌파정권이 이 나라를 통치하게 되었을 때,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국민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우리 개인의 삶을 영위할 때가 아니라 함께 힘을 모아 이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할 때입니다!” 하고 외치는 박정희와 처칠처럼.

지금 그러한 리더가 나와야 할 때다.

불행한 것은 지금 한국 정치계에는 이러한 큰 꿈을 말할 수 있는 자들이 없다. 한마디로 정치계에 ‘철학하는 자’가 없다. 자기 자리 지키려 애쓰는 사람, 나라를 자유와 방종에 빠지게 만들어 투기를 일삼는 사람은 보여도.

자신의 삶을 헌신하여 이 나라를 세우려는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10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주변에 만나는 청년들부터 준비시켜야 한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지금부터 준비시켜야 한다.
오늘 아침 독서 모임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더라. 대한민국이 어떻게 세워진 나라인데, 포기할 수 있는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데 포기할 수 있는가? 결단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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